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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내용 중 일부

최강현 원장이 직접 만나본 위기의 부부들 이야기- 고부갈등

최강현 원장이 직접 만나본 위기의 부부들 이야기

CASE 4

고부갈등

 

결혼이 남자와 여자 둘만의 만남이라면 아마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부부싸움의 횟수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서 늘 힘들다.

특히 며느리와 ‘시’ 자 들어가는 사람들과는 영원히 풀 수 없는

관계일지 모른다.

 

‘거지 같은 년’이라 욕하는 시댁

♀안선현(86년생, 가명) ♂오상균(79년생, 가명)

결혼 5년차

She said...

쪾혼수를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시어머니

쪾친정에 함부로 하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

2007년 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실수로 지금 남편의 휴대전화로 전송된 일이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편과 저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하며 서로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마음이 통한 우리는 3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지요.

결혼을 약속한 뒤 상견례 자리에서 양가 부모님은 결혼식과 혼수는 서로 간소하게 하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당시 친정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사정 이야기를 하며 양해를 구했고 시부모님도 좋다고 하시기에 결혼식 날을 잡았죠. 하지만 혼수를 준비하는 중에 시부모님은 다른 집 며느리와 비교하며 자꾸 부담을 주었습니다. ‘어느 집 며느리는 결혼하면서 시댁 가전제품을 다 바꿔줬다더라’, ‘요즘 아무리 혼수를 안 해도 모피 코트는 꼭 해야 한다더라’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하셨고, 제가 못 하겠다고 하자 ‘거지 같은 년’이라며 인격적인 무시와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순간 당장에라도 결혼을 접고 싶었지만 임신 중인데다 ‘결혼만 하면 다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묵묵히 결혼식을 올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후에도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저에게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자 산후 조리를 위해 친정어머니가 집에 오셨는데 남편이 어머니에게 ‘처가에서 경제적으로 도움 주는 것이 너무 없다. 다른 집은 사위한테 이것저것 챙겨 주느라 정신없다고 하더라’며 대놓고 빈정거리기도 했습니다. 또 남편이 제 명의로 카드를 만들어 대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시댁에서 이것을 알고는 저에게 ‘뒷돈 챙기지 마라, 도둑년’ 하면서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돼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2009년 남편에게 이혼 의사를 밝히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남편이 시누이들과 함께 제 친정집으로 들이닥쳐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제게 손찌검을 하고, 시누이들은 ‘거지 같은 집구석이 시댁에서 돈 뜯어내려고 저런 걸 시집보냈다’며 폭언을 해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에게 이런 상처를 준 인간들과 더 이상은 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비상식적인 시댁의 간섭과 무시

♀이영선(81년생, 가명) ♂홍현석(79년생, 가명)

결혼 5년차

She said...

쪾노골적으로 예물을 트집 잡는 시어머니

쪾시댁에서 산후 조리할 때 계속된 구박으로 스트레스 받음

쪾내조를 제대로 못 해 남편 일이 안 풀린다고 탓함

저는 만 3세 아들과 생후 6개월 된 딸을 두고 있습니다. 남편과는 2005년 헬스장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던 남편에게 운동을 지도받으면서 가까워져 만나기 시작했고, 2006년 첫아이를 임신하게 돼 결혼을 했습니다. 연애하는 동안 남편과 그다지 큰 싸움도 없었던 터라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행복한 상상은 신혼 초부터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으로 산산이 무너졌습니다.

신혼집에 혼수품을 들이던 날, 시어머니는 혼수품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냉장고는 왜 이렇게 작으냐’, ‘전자레인지는 왜 없냐’, ‘작은방에는 가구가 이게 전부냐’, ‘식기는 그게 다냐’ 등등 시시콜콜 트집을 잡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또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는 ‘손목시계는 왜 안 했느냐, 그런 것도 못 받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면서 대놓고 눈치를 주기도 했습니다. 상견례에서 예물은 간소하게 하기로 이미 합의를 봤는데도 말이죠.

첫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 비용이 없어 시댁에서 산후 조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 기간에도 시어머니는 출산 후 잘 먹지 못하는 저에게 ‘왜 해줘도 안 먹느냐, 잘 먹어야 해주는 사람이 흥이 나서 음식을 만드는데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음식 하기가 싫다’며 끼니때마다 구박을 했습니다. 또 제가 한기를 느껴 보일러를 틀어달라고 하니 ‘요즘 날씨에 무슨 보일러냐, 아직도 한여름이다. 너무 덥게 지내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를 달고 산다. 서늘하게 살아야 좋은 거다’라며 오히려 창문을 열어놓는 통에 결국 저는 감기에 걸려 심하게 앓았습니다. 둘째 임신 때도 만삭인 몸으로 설 명절을 지내기 위해 시댁에 가야 했습니다. 시댁에서는 새벽부터 음식 만들고 손님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결국 한밤중에 배가 너무 아파 응급실에 가서 링거를 맞고 왔는데 그런 저에게 시어머니는 “병원 간다고 무슨 수가 있겠니? 임신 중이라 약도 안 주지? 공연히 돈만 버렸구나” 하면서 핀잔만 하시더군요.

시어머니는 손주에 대한 일까지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첫아이 돌잔치 때는 “우리 식구들이 준 돈 다 어디 있니? 그 돈 다 내게 줘라. 내가 챙겨야겠다”며 축의금을 모두 가져가셨습니다. 또 시댁에 갈 때 아이 이유식이나 간식 등을 챙겨 가면 “제 아들 굶어 죽을까 봐 아주 바리바리 싸왔구나. 난 아들 둘 키웠어도 너처럼 유난스럽지 않았다”며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2010년 남편이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헬스클럽을 시작했는데 운영 문제로 시어머니와 자주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원인을 저에게 몰아가기 시작하더군요.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제대로 운영을 못 하는 것 아니니. 남자가 바깥일에만 신경쓰도록 내조를 잘해야 하는데 너는 그것도 못 하니?”라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러더니 친정 부모님께 전화해 “내가 아주 할 말이 많아요.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네요”라며 집으로 오시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오신 친정어머니에게 다짜고짜 “사돈, 자식을 아주 개같이 키우셨어, 아주 좆같이. 어디서 배워 처먹었는지 기본이 없어도 너무 없어. 어른 어려운 걸 아나, 남을 배려할 줄 아나, 남편 내조를 잘하나. 진짜 너무 잘못 키우셨어”라는 말로 시작해 1시간이 넘도록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저를 막 대하는 것까지는 참겠지만 친정 부모님한테까지 폭언을 일삼는 시어머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의 부당한 대우

♀최진연(64년생, 가명) ♂주한진(64년생, 가명)

결혼 20년차

She said...

쪾결혼 전부터 분수를 생각하라며 헤어질 것을 강요

쪾결혼 후 부잣집 동서와 끊임없이 비교

쪾시부의 병수발을 홀로 했고, 시부가 상속하기로 한 1억 원도 주지 않음

1988년 대학 시절, 같은 교회에 다니던 남편을 만나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는데 시어머니가 남편과 저의 교제 사실을 알고는 학교까지 찾아와 ‘사랑한다면 헤어져라. 분수에 맞는 사람 만나라’며 헤어질 것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남편이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로 저를 안심시켜 1993년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교제할 때부터 저를 탐탁지 않아 하셨던 시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친정에서는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혼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평생 꼬투리 잡힌다며 없는 살림에 이것저것 장만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어느 것 하나 눈에 차는 게 없다’며 시집올 때 해온 혼수품을 싸구려 취급하시더군요. 게다가 얼굴만 마주치면 “우리 한진이가 돈 많은 집에 장가갔으면 미국 유학 가서 박사 따고 교수가 되었을 텐데…”라며 결혼시킨 걸 후회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친정집이 부유한 손아래 동서가 들어오자 시어머니는 노골적으로 저와 동서를 차별했습니다. 오죽하면 동서가 “어떻게 그런 수모를 견디고 사세요?”라고 물었을 정도로 시어머니의 구박은 계속됐습니다.

2003년 시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6개월 전부터는 대소변도 못 가릴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는데 시댁에서는 누구 하나 돌볼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특히 시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인데도 입원해 있는 동안 몇 차례 얼굴만 비쳤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6개월 동안 시아버지 곁에서 대소변을 다 받아내며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고 임종도 혼자 지켰습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1억 원의 재산을 저에게 주시겠다는 유언을 남기셨지만 시어머니는 그 유언조차 무시한 채 모든 재산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혼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시어머니

♀주경희(63년생, 가명) ♂전창목(58년생, 가명)

결혼 21년차

She said...

쪾결혼 후에도 남편 월급 챙기는 시어머니

쪾시동생 학비까지 책임지는 것을 당연히 여김

쪾지나친 신앙심으로 모든 기준을 교회에 둠

쪾남편은 빚더미에 올라 몇 년째 생활비를 주지 않음

1991년 초, 제가 근무하던 약국 사장님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3개월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충분한 연애 기간을 갖지 못하고 서둘러 결혼하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양가 부모님들이 재촉하시는 통에 떠밀리듯 결혼하게 됐습니다. 확신이 없던 결혼은 시작부터 불안했습니다. 무엇보다 시댁 쪽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실수였어요.

결혼한 뒤에 알게 된 사실은 시댁 쪽의 모든 권한을 시어머니가 쥐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결혼 후 남편의 첫 월급날, 남편은 “먼저 어머니께 갖다드리자”고 하면서 “그동안 계속 월급을 갖다드렸는데 갑자기 안 드리면 서운해하실 거야. 다음 달부터는 받지 않으실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너무 황당했지만 한 번은 남편의 의견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월급 모두를 시어머니께 드렸더니 반도 안 되는 액수를 생활비로 주시면서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네 남편이 장남이니 원래 월급은 내가 모두 관리해야 하지만 널 생각해서 이만큼 주는 거다”라고 말씀하시지 뭐예요. 게다가 시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동생들이 2년 후 학업을 마치니 그때까지는 돈을 계속 보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어처구니없었지만 시동생들의 졸업까지 2년만 참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동생들은 2년 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할 거라며 이후에도 계속 학비를 요구했고, 그에 대해 시댁 식구들은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종교적인 부분까지 간섭하셨습니다. 저는 원래 종교가 없었는데 기독교를 믿는 시댁을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이면 시댁 인근에 있는 교회에 가서 아침예배부터 저녁예배까지 다 보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주일예배에 불참하기라도 하면 시어머니는 ‘악마에게 영혼을 뺏긴 년’이라며 화를 내셔서 임신 중 입덧이 심할 때도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면서 교회에 다녔습니다. 만삭일 때는 가파른 산동네에 있는 교회에 오르다가 구토를 한 적도 있어요. 이처럼 시어머니는 주일예배 참석부터 시작해 모든 생활이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분입니다. 집에 맛있는 음식이라도 생기면 목사님 먼저 갖다드려야 하고, 집에 행사가 있으면 반드시 목사님을 모시고 와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주일에 개인 일정을 잡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남편은 주식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제 친정 식구들에게까지 돈을 빌려 주식을 하는 바람에 현재 빚이 6000만 원 정도 됩니다. 2002년부터는 전혀 생활비를 주지 않아 2003년부터 별거를 한 상태입니다.

 

최강현 원장의 Solution

이번 부부들의 사례는 전형적인 고부갈등을 보여줍니다. 지구가 멸망을 해도 바퀴벌레와 고부갈등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사라지지 않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고부간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애정의 삼각관계와 다를 바 없죠.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는 어찌 보면 애인 사이와 비슷하거든요. 평생 엄마만 바라볼 것 같던 아들이 어떤 여자에게 홀려서(?) 자기를 등한시한다고 생각하면 그 서운함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그러다 보니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은 며느리와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 거고요. 거기다 며느리를 얻게 되는 시기가 보통 50대로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하는 갱년기와 겹치다 보니 갱년기 우울증에 상실감까지 더해지면서 히스테리가 배가되는 겁니다.

고부간의 갈등 해결은 우선 시어머니의 상실감을 며느리가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내 딸이라면 내가 어떻게 했을까?’, ‘나도 며느리지’라는 역지사지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요.

혼수 좀 덜 해오면 어떻습니까. 혼수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이 정도 돈은 내놓고 내 아들 데려가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자식장사 하는 시어머니로밖에 안 비춰진다는 거죠. 예전에는 ‘아들 가진 유세’라고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요즘은 딸이 귀해진 세상입니다. 또 자녀가 가정을 이룬 만큼 독립된 세대로 인정하고 지나친 간섭은 삼가야 합니다. 아들이 밥은 먹고 출근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며느리도 있는 그대로 시어머니를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사소한 참견들은 시어머니가 갖고 있는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내는 집에서 남편과 자식들을 챙겨야 하고, 남편의 바깥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너무나 몸에 밴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아무 뜻 없이 밥은 해 먹여서 출근시켰느냐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고부갈등에서는 무엇보다 남편의 역할도 중요한데요. 만약 당신이라면 어머니와 아내가 갈등을 겪고 있을 때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그게 저 역시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저는 과감히 아내의 편을 들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일단 부모님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아내의 마음부터 달래는 게 본인은 물론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길입니다. 사실 부모님은 그 뒤에 상황을 잘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해해주시거든요.

혼수 문제에서도 그 순간 남편이 “요즘 누가 그런 걸 해와요?”라고 중재할 수도 있고, 명절 때 임신 중인 아내가 집안일로 힘들어하면 어머니한테 살짝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어요” 식으로 이야기하는 등 남편도 여우 짓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배우자의 가족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참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이혼을 생각하는 거고요. 결혼생활 중에 배우자나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 이혼 사유에 해당합니다. ‘심히 부당한 대우’란 혼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참으로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폭행이나 학대 또는 모욕 등을 받은 경우를 말합니다. 상호간의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부부 사이에서 폭력 행사는 어떠한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경우는 부당한 대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예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며느리들이 ‘시’ 자가 들어가는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얘기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혼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부부끼리 한편이 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남편과 합심하면 어렵지 않게 극복해나갈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며느리도, 시어머님도 역지사지 잊지 마시고요. 남편 분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 부인의 마음을 좀 달래주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