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6살 아들이 있는 직장인 홍모(42)씨의 가계부는 늘 마이너스다.
그의 월급은 400여만원인데 한 달 용돈은 30만원에 불과하다.
매달 두 아들의 축구교실과 영어학원 등에 100만원이 들고,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150만원이 빠져나간다.
4인 가족 생활비로 80만∼100만원을 쓰면 남는 건 30만원이다.
이 돈이 그의 유일한 용돈 겸 노후대책이다.
"소득공제 혜택 때문에 연금저축을 꾸역꾸역 넣고 있다"는
홍씨는 빚을 다 갚는 40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노후 준비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워놨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아들들의
사교육비와 대학학자금이 복병이 돼 버린다.
홍씨는 "15년 걸려 힘겹게 마련한 아파트를 역모기지로
잡아 노후 생활비를 충당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내집 장만·자녀 교육에 살림살이 빠듯
'백 세(百歲) 시대.' 의료 기술의 발달로 생명 연장의 꿈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장수(長壽)는 연장된 수명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선물'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짐'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늘어난 수명에 대한 부담이 더 큰 게 현실이다.
국민 2명 중 1명 "은퇴준비 엄두 못내요"
19일 보험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두 명 중 한 명이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노후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노후 준비에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 중에는 대도시,
남성, 20대 계층 비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현재 노후 준비 상태를 고려했을 때 은퇴 후 예상되는
소득은 자신들이 생각할 때 필요한 금액의 41.8% 정도에 불과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2014년 한국인의 은퇴준비'에 따르면 비은퇴자들은
은퇴 후 최소 생활비는 월평균 211만원이고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생활비는 319만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35%만이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하고 있으며,
금액도 월평균 15만원 정도다. 은퇴 후 준비에 무관심하거나
자녀 사교육비, 주택 담보대출 등으로 당장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는 재무, 건강, 활동, 관계 등 네 가지 영역에 걸친 은퇴준비 평가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은퇴준비 점수로 낙제점 수준인 56.7점을 매겼다.
2018년 고령사회(65세 인구가 총인구의 14% 이상)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는 '노인천국' 대한민국에 가혹한 점수이다.
시니어 복지사업과 은퇴연구 활동을 벌이는
'50플러스코리안'의 한주형 회장은 "최근 2∼3년 새 각종 은퇴 세미나가
급증했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참여도 적극적"이라며
"한국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노후 준비에 대한 관심이
10년 이상 늦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만큼 서둘러
노후 대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