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100세 시대, 아직 안늦었다"…이혼? 이젠 '졸혼'
[이혼, '쩐'의 전쟁③] 이혼 부부 3쌍 중 1쌍이 20년 이상 부부생활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입력 : 2018.04.10 04:02
편집자주결혼은 현실이다. 이혼도 현실이다. 살아온 정(情)보다 '돈'이 앞선다. 사랑해도 빚 때문에 갈라서고, 이혼하고 싶어도 집 때문에 같이 산다. 자식 때문에 이혼 못하고, 이혼을 해도 자식이 어깨를 짓누른다. 부부가 번 돈보다 부모들이 물려준 돈이 더 중요한 요즘, 이혼을 통해 달라진 세태를 들여다 본다.
#김모씨(65)와 이모씨(여·62)는 결혼 33년 만인 지난해 10월 '졸혼'(결혼을 졸업한다)에 합의했다. 법적으로는 혼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부부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졸혼 계약서에는 서로의 이성 친구 만남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일주일에 1번만 귀가하면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결혼해 출가한 자녀들도 김씨와 이씨의 졸혼을 지지했다. #35년차 부부 이모씨(71)와 박모씨(여·70)는 지난해 5월 이혼했다. 부부는 평소 경제적인 이유로 다퉜는데 이씨는 다툴 때마다 박씨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박씨는 괴로웠지만 아들과 딸을 보며 견뎠다. 결국 박씨는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자 이혼을 결심했다.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다 각자의 삶을 찾아가기 위해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지난해 이혼 부부 3쌍 중 1쌍이 20년 이상을 함께한 부부다. 이달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 10만6000건 가운데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3만3100건으로 31.2%를 차지했다.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만 1만1600건으로 전체 10.9%다. 황혼이혼과 더불어 졸혼도 늘고 있다.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거나 재산분할, 소송 등 복잡한 이혼 절차를 꺼리는 부부들이 이혼 대신 졸혼을 선택한다. 최강현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부부행복연구원 원장)은 "사회적 지위가 있고 경제생활이 안정된 부부일수록 주변 시선을 의식해 이혼 대신 졸혼을 많이 선택한다"며 "이혼조정 때 한쪽이 이혼이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조정이 결렬되고 재판으로 가게 되는데 졸혼은 이럴 때 차선책이 된다"고 말했다.우리 사회에 황혼이혼과 졸혼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건 베이비붐 세대(1946년~1965년생) 남성들의 은퇴시기와 맞물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1946년생이 59세가 되는 2005년에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비중이 전체의 20%를 돌파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베이비붐 세대는 가부장제 문화가 익숙한 세대로 남성은 '경제활동'을 여성은 '집안일'을 요구받았다. 이 세대 남성들은 은퇴한 후에도 아내에게 집안일을 요구하지만 아내는 더 이상 과거의 여성이 아니다. 가정에 헌신했던 아내는 이제 독립적인 삶을 꿈꾼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더이상 기댈 이유도 크지 않다.강희남 한국전환기가정센터포럼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은 은퇴 후 부인에게 의지하려고 하지만 부인은 더는 가정에 얽매이길 싫어한다"며 "딸들이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을 간접 경험한 베이비붐세대 어머니들은 이제 남은 수십년을 자신을 위해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변하고 있다. 김신혜 Yk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과거에는 이혼이 흠이 되고 자녀에게 큰 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참고 사는 게 오히려 자녀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20년 동안 가정주부만 했어도 재산분할 할 때 기여도가 높아 최근에 재산분할 하면서 이혼하는 노부부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이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00세 시대인 요즘은 은퇴 후 20∼30년을 같이 보내야 하기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남성은 권위주의적 문화를 버리고 여성들도 변화한 남성의 역할과 환경을 인정하고 노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