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성매매 방지특별법]
(최강현/ 제주건강과성박물관장.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
몇해전 신문 사회면을 연일 장식했던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의 사건에 이어서 나주 고종석 사건 등 잇따른 성범죄 발생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과거 원시 수렵시대도 아닌데 지금의 성범죄는 인간의 존엄성과 반인륜적인 범죄 형태로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어 성교육 전문가로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다.
정부는 성범죄 우범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 확대’를 핵심대책으로 내놓았다. 기존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 한해 약물치료를 하도록 했던 것을, 19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까지 확대 적용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이 대책을 보면서 뭔가 개운치 않는 느낌이다. 이번 대책은 2010년 김수철 사건 당시 정부가 내놓았던 대책과 거의 비슷하다. ‘재탕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성충동 약물치료, 이른바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를 예방하는 근본적인 대책이냐다.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자에 대한 2중 처벌 논란의 대상이다. 또한 1회에 15∼17만원이나 드는 치료비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는 지도 의문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실효성 문제다. 약물 치료 중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면 얼마든지 발기가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열렸던 ‘화학적 거세’ 제도와 관련한 성(性) 학회 토론에서도 화학적 거세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보다 강력한 ‘생물학적 거세’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처럼 성(性)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화학적 거세’ 제도가 경고적인 효과는 있어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데 모아지고 있다.
일부에선 성범죄 증가와 관련해 경찰의 책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경찰력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배경에서 문제점을 찾고 공개 토론과 국민적 합의를 통해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올바른 대책을 내놓기 위해선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제대된 된 원인 분석은 진정한 현실과 마주해야 가능하다. 피하고 싶거나 금기시된 현실이더라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파악해야 현실에 맞는, 종합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최근 흉악한 성범죄의 증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현실을 얘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성범죄 증가가 강력한 성매매 방지특별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과 연관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2004년 9월 참여정부 당시 시행된 성매매 방지특별법은 입법취지에 따라 여성의 인권보호가 향상되는 등 순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성매매를 전면 금지함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해 오히려 법안이 지키고자 했던 여성들을 불안케 하고, 그 피해가 부메랑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필자가 만난 현직 경찰관들 가운데 많은 수가 “성매매 집결지가 문을 닫게 되면 성범죄가 더 증가하고 성문화도 문란해지며, 없애는 것보다는 관리가 가능한 공간에 모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성범죄의 증가율을 보면 경찰관들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2010년 UNDOC(유엔마약범죄사무소)가 발표한 국가별 10만명당 성범죄(강간) 발생비율을 보면, 성매매 불법국인 한국은 467건으로 2004년 성매매 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급증했다. 같은 불법국인 스웨덴도 63건으로, 2003년 25건에서 증가했다.
반면 성매매 합법 및 비범죄화 나라들 중 독일은 2010년 9.4건으로, 2000년대 초반 60건에서 감소했다. 호주도 2010년 26.2건(2003년 91건)으로 급감했으며, 네덜란드(9.2건), 그리스(1.9건), 대만(6.7건), 싱가포르(2.7건), 일본(1.1건)등도 감소추세다.
(출처, 유엔 공식자료 http://en.wikipedia.org/wiki/Rape_statistics)
독일, 호주, 네덜란드 등 서구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이들 국가는 직업선택의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과 장애인의 성적(性的) 복지 차원에서 성매매를 비범죄화 하여 성범죄율을 낮췄다는 보고도 있다.
성매매가 성범죄율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는 얘기다.
성매매는 각각의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탄력적으로 법적용을 하고 있으며, 성매매의 법적 논쟁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가 주부대학, 여성대학에서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성매매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많은 수의 여성이 성매매의 일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또한 성매매 방지특별법으로 인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남성들은 불만이 많은 게 현실이다.
몇 달전 한국갤럽은 성인 624명을 대상으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했다. 성매매 방지특별법이 성범죄 증가의 원인이 됐다는 설문에 48%가 공감했고, 40%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 가운데 성인남성의 56%는 성매매방지특별법 때문에 성범죄가 증가한다고 했다.
또한 성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 특정지역 내에서 성매매를 일부 허용해야 한다는 질문엔 찬성 48%, 반대 42%로, 찬성 의견이 우위를 보였다. 성매매 일부허용에 대한 찬성 의견을 성별로 보면, 남성은 58%, 여성은 39%였다.
정부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2년 이혼 가구는 130만, 사별 가구 200만으로 전체 1720만 가구 중 1인 단독가구가 435만 가구로 27% 에 달하고 있다.
형편과 능력이 없어 결혼을 못한 노총각, 독거노인, 군인, 장애인, 외국인 100만명 중 산업연수생, 기러기 아빠, 주말 부부 등 정상적으로 성적관계를 갖기 어려운 계층의 성적 복지를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적 소수자들이 성적 관계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정부는 관심이 없다.
이상과 현실은 따로 놀고 있다. 성매매 방지특별법 시행 후 문제점으로 나타난 풍선효과로 인해 주택가로 들어온 변종 성매매는 이제 지역의 구분마저 없앴다. 또한 성병의 증가로 인한 국민보건의 위협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법과 현실이 다르고, 지켜지지도 않는 성매매 방지특별법이 시행 된지도 올해로 9년이 됐다. 국가를 운영하는 법과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게 돼 있어도 문제점과 방안을 알고 있는 많은 학자나 전문가, 정치인들은 눈을 가리고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성폭력의 피해를 당하고 사회적 비용을 잃고서야 이 문제를 공론화할지 의문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성범죄의 양상과 시그널을 보고도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겪을 것이라고 본다. 오늘도 딸을 둔 부모들은 바쁜 직장생활과 가사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학원과 학교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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