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운 남편이 아내의 반대에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을까. 지난 50년간 논란이 됐던 '혼인 파탄을 야기한 배우자의 이혼청구 허용 여부'에 대해 대법원이 26일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결혼생활 파탄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를 유지해 왔다. 이혼 원인을 엄격하게 제한해 혼인을 유지하고, 파탄에 책임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부부 관계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잘못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해도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파탄주의'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날 양승태 대법원장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지를 공론화해 신중하게 재검토하는 기회를 갖는 게 좋으리라 판단했다"며 공개변론 취지를 밝혔다. 대법원 최종 선고는 이르면 9월쯤 나올 전망이다.
이번 사건 당사자인 남편 A씨는 1976년 현재 부인 B씨와 결혼해 자녀 3명을 뒀지만 1998년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고 동거에 들어갔다.
B씨와 별거 중에도 월 100만원씩 생활비와 교육비를 지급해온 A씨는 자녀들과 불화를 겪자 생활비 지급을 끊고 급기야 2011년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이에 B씨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미혼인 두 자녀 때문에라도 이혼 청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섰다.
1·2심은 "A씨가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B씨가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날 변론에서 A씨 측 대리인으로 나선 김수진 변호사는 "파탄된 혼인 관계를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노력은 부부를 비롯해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고통을 줄 뿐"이라며 "법원이 유책주의를 고수한다면 당사자들로 하여금 상대방이 유책 배우자라는 점을 주장·입증하도록 해 서로 반목과 증오만 키울 뿐이며 혼인 관계 구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에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55.4%와 전문가 78.7%가 배우자 보호조건 아래 파탄주의를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데 찬성했다"며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재산분할청구권과 면접교섭권이 신설됐고, 재산 분할에 있어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기여도를 최고 50%까지 인정하는 등 제도적 여건도 크게 성숙됐다"고 설명했다.
참고인으로 나선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파탄주의 이혼법을 채택해 당사자가 이혼에 합의했을 때는 대개 1~2년, 이혼 합의 없이 2~5년 동안 별거하면 혼인이 파탄된 것으로 추정한다"며 "우리도 혼인이 파탄났음을 추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국민 정서와 비교법적인 과점에서 5년 정도 별거기간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반면 파탄주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나왔다. 이혼을 거부하는 B씨 측 양소영 변호사는 "혼인도 민법상 중요한 계약"이라며 "부정행위를 해 혼인계약을 깬 자가 '이제 혼인 파탄됐으니 해방시켜 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법이나 판례로 보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 협의이혼 비율이 80%에 이르고 재판상 이혼은 전체 이혼 중 20% 정도에 불과해 파탄주의를 택할 실익이 많지 않다"며 "민법이 개정돼 가혹한 축출이혼이 나타나지 않고 자녀가 보호받을 수 있게 보호규정을 만든다면, 그때 파탄주의를 채택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도로 인해 생겨난 가정도 기존 가정과 같이 행복추구권과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양승태 대법원장 지적에 대해선 "권리 충돌 문제가 생겼을 때 적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배우자(본처)와 자녀들이 우선돼야 하며, 혼외자는 가족관계등록부 도입과 한 부모 가정 지원 등으로 보호받을 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답했다.
참고인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파탄주의로 전환한 대부분 국가들은 동거나 사실혼, 그리고 혼외 출생자 비율이 높아 가족구조와 혼인에 관한 의식이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르다"며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적으며 남성과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에 격차가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어 과도기에 있는 우리 사회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파탄주의로 전환했을 때 '혼인 생활에 잘못이 있어도 언제든지 이혼을 원하면 할 수 있다'거나 '혼인 생활을 성실히 했으나 언젠가는 내 의사에 반해서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의식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금까지 대법원은 결혼생활 파탄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를 유지해 왔다. 이혼 원인을 엄격하게 제한해 혼인을 유지하고, 파탄에 책임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부부 관계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잘못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해도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파탄주의'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날 양승태 대법원장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지를 공론화해 신중하게 재검토하는 기회를 갖는 게 좋으리라 판단했다"며 공개변론 취지를 밝혔다. 대법원 최종 선고는 이르면 9월쯤 나올 전망이다.
이번 사건 당사자인 남편 A씨는 1976년 현재 부인 B씨와 결혼해 자녀 3명을 뒀지만 1998년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고 동거에 들어갔다.
B씨와 별거 중에도 월 100만원씩 생활비와 교육비를 지급해온 A씨는 자녀들과 불화를 겪자 생활비 지급을 끊고 급기야 2011년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이에 B씨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미혼인 두 자녀 때문에라도 이혼 청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섰다.
1·2심은 "A씨가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B씨가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날 변론에서 A씨 측 대리인으로 나선 김수진 변호사는 "파탄된 혼인 관계를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노력은 부부를 비롯해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고통을 줄 뿐"이라며 "법원이 유책주의를 고수한다면 당사자들로 하여금 상대방이 유책 배우자라는 점을 주장·입증하도록 해 서로 반목과 증오만 키울 뿐이며 혼인 관계 구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에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55.4%와 전문가 78.7%가 배우자 보호조건 아래 파탄주의를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데 찬성했다"며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재산분할청구권과 면접교섭권이 신설됐고, 재산 분할에 있어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기여도를 최고 50%까지 인정하는 등 제도적 여건도 크게 성숙됐다"고 설명했다.
참고인으로 나선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파탄주의 이혼법을 채택해 당사자가 이혼에 합의했을 때는 대개 1~2년, 이혼 합의 없이 2~5년 동안 별거하면 혼인이 파탄된 것으로 추정한다"며 "우리도 혼인이 파탄났음을 추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국민 정서와 비교법적인 과점에서 5년 정도 별거기간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반면 파탄주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나왔다. 이혼을 거부하는 B씨 측 양소영 변호사는 "혼인도 민법상 중요한 계약"이라며 "부정행위를 해 혼인계약을 깬 자가 '이제 혼인 파탄됐으니 해방시켜 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법이나 판례로 보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 협의이혼 비율이 80%에 이르고 재판상 이혼은 전체 이혼 중 20% 정도에 불과해 파탄주의를 택할 실익이 많지 않다"며 "민법이 개정돼 가혹한 축출이혼이 나타나지 않고 자녀가 보호받을 수 있게 보호규정을 만든다면, 그때 파탄주의를 채택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도로 인해 생겨난 가정도 기존 가정과 같이 행복추구권과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양승태 대법원장 지적에 대해선 "권리 충돌 문제가 생겼을 때 적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배우자(본처)와 자녀들이 우선돼야 하며, 혼외자는 가족관계등록부 도입과 한 부모 가정 지원 등으로 보호받을 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답했다.
참고인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파탄주의로 전환한 대부분 국가들은 동거나 사실혼, 그리고 혼외 출생자 비율이 높아 가족구조와 혼인에 관한 의식이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르다"며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적으며 남성과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에 격차가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어 과도기에 있는 우리 사회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파탄주의로 전환했을 때 '혼인 생활에 잘못이 있어도 언제든지 이혼을 원하면 할 수 있다'거나 '혼인 생활을 성실히 했으나 언젠가는 내 의사에 반해서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의식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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